
1. 영화 내용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 소녀 ‘선’이 새로운 친구 ‘지아’를 만나고, 짧은 여름방학 동안 친구가 되지만, 개학 후 예상치 못한 거리감과 갈등을 겪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어린이들의 시선에서 그려지는 미묘한 관계 변화와 감정의 흐름을 중심으로,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방학을 앞둔 어느 날, 친구가 거의 없는 선이가 혼자 놀고 있을 때 전학 온 ‘지아’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선과 지아는 곧 가까워지고, 함께 비밀을 나누고 놀며 우정을 쌓아갑니다. 둘만의 특별한 시간은 서로를 지지해 주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시작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지아는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보라’ 무리에 합류하게 되고, 선이를 외면합니다. 선은 이유도 모른 채 갑작스럽게 소외당하며 혼란과 상처를 겪습니다. 이후 선과 지아 사이에는 서로를 향한 실망, 질투, 서운함, 그리고 미움이 복잡하게 얽힌 감정의 줄다리기가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 누구나 겪을 법한, 하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 ‘서운함’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갈등은 심화되고, 선은 지아가 숨기고 싶어 하는 가족 문제를 친구들에게 폭로하면서 둘의 관계는 완전히 무너지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의 상황을 극단적인 결말로 몰아가지 않고, 두 아이의 시선으로 관계의 회복 가능성과 감정의 복잡함을 조심스럽게 풀어갑니다. 단순한 아동 영화가 아니라, 어린이들이 겪는 외로움, 배제, 소속 욕구, 그리고 상처를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짧고 평범한 여름방학이 한 아이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감정의 시기임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2. 인물 탐색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선이에요. 세 명의 주요 초등학생 캐릭터선이, 지아, 보라는 모두 자신만의 상처와 욕망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손선은 조용하고 소극적이며 친구가 거의 없는 아동입니다. 그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지만 내면에는 따뜻한 감성과 관계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지아를 만나 친구가 되며 처음으로 누군가와 깊은 정서를 나누는 경험을 하지만, 이후 배신당한 감정에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선이는 소외당한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누구보다 관계에 진지한 인물이자, 상처받기 쉬운 순수함의 화신입니다. 김지아는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로, 처음엔 어딘가 차분하고 어른스러워 보입니다. 선이와 금세 친해지지만, 개학 후 보라 무리에 들어가면서 선이를 외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아 역시 마음속에 혼란을 안고 있습니다. 부모의 이혼, 엄마와의 갈등, 가정 불화는 지아의 불안정한 감정과 관계 태도를 설명해 줍니다. 지아는 선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한 아이입니다. 지아는 그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과 환경 속에 놓인 존재입니다. 박보라는 선이와 지아 사이의 갈등을 촉발시키는 계기를 제공하는 인물입니다. 보라 역시 단순한 ‘악역’이 아닌, 자신의 입지와 인기를 지키기 위해 작고 반복적인 배제를 무기 삼는 아이입니다. 선이를 괴롭히는 장면도 나오지만, 이는 친구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권력과 소속의 미묘한 작용을 보여주는 예시일 뿐, 보라 역시 불안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이입니다.
이 세 인물 모두 상처받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상처를 주기도 하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감독은 이들의 감정과 선택을 비난하지 않고, 조용히 따라가며 이해하려 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선이 혹은 지아였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리게 합니다.
3. 후기 및 해석
<우리들>은 보기 전에는 ‘초등학생 이야기니까 가볍겠지’라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지만, 막상 보고 나면 놀라울 만큼 깊은 공감과 울림을 주는 영화입니다. 초등학생 아이들의 소소한 갈등을 그리지만, 그 안에는 인간관계의 본질, 외로움, 소속 욕구, 배신, 회복이라는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감정들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감정의 진폭을 과장하지 않고, 담백한 시선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진지하게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극적 장치나 음악 없이도 조용히 마음을 파고드는 서사가 압권이에요. 아이들이 실제로 말할 법한 말투, 주저하는 표정, 눈빛의 변화까지도 섬세하게 잡아낸 연출은 거의 다큐멘터리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세계 역시 매우 복잡하고 정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어른들이 보기엔 ‘그냥 아이들 싸움’ 같지만, 그 안에는 사회의 축소판처럼 관계의 권력, 소속의 불안정성,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이들의 갈등을 통해 어른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투영해 보여주며, ‘성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합니다. 후반부에 선이가 지아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시 다가가려는 장면은, 인간관계가 끝나기보다는 계속 변화하고 흘러간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관계의 끊어짐을 슬퍼하지만, 동시에 그 틈새를 통해 이해와 공감이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잃지 않죠.
마지막으로 우리들은 한국 아동영화 혹은 성장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고, 조용하지만 강렬한 감정의 힘을 가진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감정을 건드리는 진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