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독 및 연출
<퍼스트 리폼드>는 폴 슈레이더(Paul Schrader) 감독의 작품으로, 그는 영화계에서 각본가로 더 유명한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도 고독한 남성, 내면의 분열, 신념과 도덕적 갈등에 시달리는 인물을 중심으로 깊이 있는 심리극을 만들어낸다.
슈레이더의 연출 스타일은 철저히 내면에 집중된 영화 언어를 구사한다. <퍼스트 리폼드>에서는 상업적 장식이 거의 없다. 음악도 거의 없고, 카메라 무빙도 절제되어 있으며, 편집은 느리고 조용하다. 이러한 연출은 주인공의 내면과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관객이 스스로 느끼도록 유도한다. 슈레이더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명상적인 리듬을 가져야 했다. 인물의 마음속 기도를 따라가는 것처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퍼스트 리폼드>는 벽에 걸린 그림처럼 정지된 구도를 자주 활용한다. 거의 모든 장면이 고정된 카메라에서 촬영되며, 종종 정중앙에 인물이 배치된다. 이러한 구도는 침묵과 정적인 미장센을 강조하며, 신성성과 절제의 미학을 형성한다. 슈레이더는 이 영화를 만들며 유럽 영화, 특히 드라이어의 <오르되>나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처럼 형이상학적인 공간 속에서 인간의 믿음과 의심을 다루는 방식을 차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던지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신은 정말 침묵하는가?”, “신앙은 행동인가?”, “세상의 죄를 감당하는 자는 누구인가?”와 같은 근본적이면서도 고통스러운 질문들이 영화 전체에 흐른다. 이러한 연출과 구조는 <퍼스트 리폼드>를 단순한 종교 영화도, 환경 영화도 아닌, 철학적 성찰의 공간으로 만든다.
2. 줄거리
<퍼스트 리폼드>의 이야기는 미국 뉴욕주의 한 작은 개신교 교회, ‘퍼스트 리폼드 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교회는 25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오래된 교회지만, 현재는 거의 신도가 없고 관광용 기념관처럼 방치되어 있다.
이곳의 목사 ‘에른스트 톨러’(에단 호크)는 전직 군인 출신으로, 아들을 전쟁터에 보낸 후 자살로 잃은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그는 지금껏 자신을 믿음으로 지탱해 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신념과 회의 사이에서 무너지고 있다.
어느 날 젊은 여성 신도인 ‘메리’가 그를 찾아와 남편 마이클의 상담을 요청 한하는데 마이클은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로, 세상의 종말을 확신하며 태어날 아이에게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인간이 망치고 있는데, 종교는 왜 침묵하느냐”라고 묻는다. 마이클과의 대화는 톨러의 내면 깊숙한 곳을 자극하고, 그의 오랜 죄책감과 무력감을 건드리며 곧이어 마이클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메리는 홀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톨러는 점점 신의 뜻과 인간의 현실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자신의 몸은 병들어가고, 마음은 고통 속에 점점 더 침잠한다. 그는 기도하면서도 점점 신의 침묵을 실감하고, 동시에 기후 위기와 인간의 탐욕이 가져올 파멸에 대해 강한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점차 극단적인 생각을 품게 되며 부유한 산업가들이 주도하는 기념예배에서 스스로를 폭발물과 함께 희생하여 세상에 경고를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메리가 다시 등장해 그를 붙잡고, 그는 그녀와 포옹하면서 끝내 행동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영화는 여기서 열린 결말을 제시하며 이 장면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주인공의 내적 구원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중요한 건, 톨러가 자신의 고통과 절망을 넘어 다시 한번 인간적 연결을 경험했다는 사실이며 신앙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보다는, 그 질문 자체를 붙드는 한 남자의 고뇌를 따라간다.
3. 감상 포인트
<퍼스트 리폼드>는 매우 정적인 영화지만, 그 안에는 종교, 환경, 인간의 내면, 그리고 사회적 위기에 대한 강렬한 감정과 질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영화를 감상할 때 관객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에단 호크의 연기와 캐릭터의 내면이다. 그는 전형적인 성직자의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깊은 회의와 자책에 시달리는 인물로 점점 붕괴해 간다. 감정을 절제한 채 내면을 쌓아가는 이 연기는 매우 정교하며, 절망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초상을 진실하게 담아낸다. 그의 일기장 독백, 병든 몸을 감추는 씁쓸한 행동, 점점 강화되는 분노의 흐름이 모두 심리적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둘째는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종교는 세상의 고통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톨러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기력함에 괴로워한다. 특히 환경문제를 통해 드러나는 이 무력감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에게도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종말론적 사고방식과 종교의 도덕적 책임 사이에서 그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데, 이는 오늘날 종교와 행동주의, 그리고 윤리적 저항의 가능성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셋째는 연출과 영상 스타일이다. 영화는 흑백처럼 보이는 차가운 색조, 고정된 카메라, 대칭적 구도 등을 활용해 교회라는 공간의 엄숙함과 폐쇄성, 인물의 고립감을 강화한다. 이런 정적인 화면 구성은 주인공의 내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관객에게 사유의 여백을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넷째는 메리라는 인물의 존재다. 그녀는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니라, 톨러에게 마지막 순간 인간적인 연결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이름 ‘Mary’는 성경 속 마리아와의 상징성을 암시하며, 모성과 순결, 구원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그녀와의 접촉, 마지막의 포옹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구원이며, 신이 끝까지 침묵하지 않았다는 은밀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여지를 남긴다.
4. 평가
<퍼스트 리폼드>는 2017년 전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깊은 철학적 울림을 준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특히 미국 독립영화계는 물론, 유럽의 미학적 영화 전통과도 맞닿은 이 영화는 기독교 신앙, 환경 위기, 개인의 도덕적 갈등을 조합한 드문 성취로 여겨졌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현대 종교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했다. 종교를 무비판적으로 찬양하거나, 반대로 극단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본질을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로저 이버트 사이트, 인디와이어 등에서 이 영화는 “진정한 성찰의 영화”, “에드가 라이트나 놀란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영화”로 극찬받았다.
로튼토마토 신선도는 93%, 메타크리틱 점수는 85점 이상으로, 평단에서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다. 에단 호크의 인생 연기라는 평가도 이어졌으며, 그는 이 영화로 수많은 비평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해 많은 영화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다만 폴 슈레이더는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라, 자신의 영화적 커리어를 다시 조명받는 계기가 되었다.
관객 평가는 조금 엇갈렸지만, 이 영화의 정적이고 무거운 분위기를 받아들인 이들에겐 인생 영화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고 며칠간 생각에 잠겼다”, “무기력과 분노, 믿음과 의심의 모순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반면, 기존 할리우드 액션이나 대중적 구조에 익숙한 관객은 “지루하다”, “결말이 불친절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퍼스트 리폼드>는 모든 관객을 위한 영화는 아니지만, 자신만의 질문을 안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단지 종교나 환경 문제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나 자신이 지금 무엇을 믿고 있는가”에 대해 묻는 철학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