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퍼스트 카우 영화 개요
퍼스트 카우는 미국 인디 영화계의 거장 켈리 라이카트(Kelly Reichardt)가 연출한 작품으로, 서부 개척 시대의 이면을 차분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퍼스트 카우는 2019년 텔루라이드 영화제(Telluride Film Festival)에서 첫 공개된 후, 뉴욕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 등에서도 상영되며 큰 호평을 받았다. 2020년 3월 개봉했지만,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극장 상영이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과 인디 영화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2020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혔다. 영화는 19세기 초 미국 오리건 주를 배경으로, 가난한 요리사와 중국인 이주 노동자가 우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일반적인 영화들과 달리, 퍼스트 카우는 거칠고 폭력적인 개척자들의 삶을 다루기보다, 소박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라이카트 감독 특유의 잔잔한 연출과 세밀한 미장센을 통해,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작은 인간 군상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촬영은 4:3 화면비로 진행되어 과거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며, 자연스러운 조명과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당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이 작품은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자본주의가 확립되기 전의 경제적 생태계와 생존 방식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다. 특히, 제목에 등장하는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시작을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기능한다.
2. 퍼스트 카우 줄거리
영화는 현재 시점에서 시작된다. 한 여성이 숲 속을 걷다가 땅속에 묻힌 두 개의 유골을 발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후 영화는 19세기 초반 오리건 주로 시간대를 이동한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 한 요리사 쿠키(존 마가로)는 털가죽 사냥꾼들의 무리에 속해 있다. 그는 섬세하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강압적이고 거친 사냥꾼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어느 날 그는 숲 속에서 중국인 이주 노동자 킹 루(오리온 리)를 발견한다. 킹 루는 러시아 상인들에게 쫓기고 있으며, 쿠키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숨겨준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곧 친구가 되어 함께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머무는 마을에는 영국 출신의 한 대지주(토비 존스)가 있는데,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젖을 생산할 수 있는 ‘첫 번째 젖소’를 소유하고 있다. 쿠키와 킹 루는 이 소를 몰래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밤마다 몰래 소의 젖을 짜서, 이를 이용해 고급스러운 빵과 도넛을 만들어 시장에서 판매한다. 쿠키의 뛰어난 요리 실력 덕분에 그들의 빵은 빠르게 인기를 끌고, 마을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며 빵을 사려고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점점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더 많은 젖을 짜야 하고, 결국 대지주는 자신의 소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쿠키와 킹 루는 들킬 위험이 점점 커지고, 결국 그들의 범행이 발각되면서 위기에 처한다. 마을을 떠나 도망치려 하지만, 운명은 그들에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마지막에 현재 시점으로 돌아오며, 처음 발견된 유골이 누구의 것인지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는 서부 개척 시대의 소박한 꿈과 현실의 가혹한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3. 퍼스트 카우 총평
퍼스트 카우는 전형적인 서부극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며, 정적인 흐름 속에서 깊은 감정과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라이카트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는 빠른 전개나 강렬한 액션보다는 서정적인 분위기와 섬세한 감정 표현에 집중한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시작’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이 인간 관계와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쿠키와 킹 루의 관계는 단순한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넘어선다. 그들은 각자의 배경과 언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의 작은 성공은 결국 당시 사회 구조 속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으며, 불평등한 세계에서 개인의 꿈이 어떻게 좌절되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영화의 미장센과 촬영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다. 4:3 화면비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며, 인물과 자연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방식이 마치 그림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잔잔한 배경음악과 절제된 대사는 인물들의 내면을 더욱 강조하며, 관객들에게 서사의 빈 공간을 채울 여지를 제공한다.
특히, 쿠키와 킹 루가 함께하는 장면들은 매우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이들은 서부 개척 시대의 거친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불안정한 사회 구조와 탐욕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며, 결국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대한 애잔한 초상을 그린다.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서정적이면서도, 자본주의의 초기 형성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관객들에게 단순한 스토리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며, 시간이 지나도 계속 곱씹게 만드는 작품이다. 단순한 서부극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깊이 있는 스토리와 감성적인 연출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강렬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